종도사님 대도문답 > 어서와~ 증산도는 처음이지?

진리FAQ

자주하는 질문


Q┃ 증산도에 따르면 1871년에 하느님이신 상제님께서 강증산이란 이름으로 조선에 내려오셨습니다. 상제님은 또한 서신西神이십니다. 도교와 유교에서는 하느님의 의미로 옥황상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불교에서는 미륵불이라 씁니다. 증산도에서는 하느님을 상제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상제님은 얼마나 많은 신의 역할을 맡고 계십니까? 


사실 이 질문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질문의 의도를 가만히 보면, 전에는 전혀 그런 생각 없이 ‘아, 각 종교에는 그렇게 호칭이 다른 최고의 신이 계시는구나. 그런 신앙 대상이 있구나.’ 이렇게 알고 신앙을 해 왔는데, 막상 증산도에 들어와 보니까 이게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더라는 겁니다. 이것은 인간 역사상 동서 각 종교에서 깨달은 바의 총 결론이자 각 종교에서 제기되어 온 절대자의 호칭, 각 문화권에서 수천 년 동안 영적 거장들이 하늘에서, 또 지상에서 깨달은 진리의 주제, 그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그들의 주기도문의 첫 구절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버지’가 있습니다. 온 우주를 만들고 만물의 생명계를 직접 다스리며 관여하는 초월자로서 신,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또 불교에서는 도솔천에 천주님으로서 미래의 부처 미륵님이, 도교에는 옥황상제님, 유교에서는 상제님이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동서의 주요 종교문화권에서는 절대자를 각각 다르게 불러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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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각 종교 문화권에서 다르게 불러 온 절대자는 서로 관계가 없는 것일까요?


지금부터 135년 전인 신미(辛未, 도기 1, 1871)년, 동방 한국 땅에 이 우주를 통치하시는 참하나님,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강세하셨습니다. 그런데 상제님께서는 당신님을 유교나 도교에서 불러 온 ‘상제’, 보다 구체적으로 ‘옥황상제’라고 칭하셨습니다. 그리고 서양 기독교에서 외쳐 온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으로, 또 유불선·기독교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언어, ‘서신(西神)’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 서신(West God)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하나님은 동서를 동시에, 또 이 지구만이 아니라 온 우주를 맡아서 다스리실 텐데 어떻게 웨스트 가드(West God)만 되느냐, 서신이란 도대체 뭐냐는 겁니다.


‘서신’이라는 말은 사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종교에 대해 체계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일수록 더욱 알기 어렵습니다. 불교 경전의 전문가, 수십 년 앉아서 수행만 한 사람, 또 금세기의 유명한 신학자들도 웨스트 가드(West God)를 모릅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시는데 서신으로 오신다.’는 것을 알 수 없다 이겁니다.

문제의 요지는, 지구촌의 각 종교 문화권에서 깨달음의 총 결론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어 온 ‘미륵불’과 ‘아버지 하나님’, ‘상제님’이 정말로 각기 다른 인격체냐, 완전히 다른 신들이냐?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증산 상제님이, 도솔천의 하나님으로서 오셨다. 증산 상제님은 당신 스스로 서양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과 그 신격이 같다고 말씀하셨다. 각 종교에서 말하는 그 호칭은 같은 한 분의 절대자를 가리킨다. 그래서 같다.’ 이렇게 단순 논리로 알아 버리면 안 됩니다. 진리란 그렇게 체험 없이, 체계 없이, 신앙 대상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각 문화의 깨달음의 결론만 똑 따서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상제님은 왜 상생문화연구소의 하제 연구원이 질문한 것처럼 여러 가지 호칭으로 말씀을 하셨을까요? 왜 상제님은 불교에서 앞으로 오신다고 한 미륵님으로, 유교, 도교에서 말한 상제님으로, 또 서양 기독교에서 지난 2천 년 동안 외쳐 온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느냐 이 말입니다.


내가 이 질문에 대하여 답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제기하고 싶은 것은, 각 종교에서 그동안 자기들의 신앙의 대상에 대하여 최고신으로, 앞으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실 구세주, 구원자로 불러 온 그 호칭에 대해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륵은 누구이시며, 그분이 계시는 도솔천 하늘이란 어떤 곳인지, 도교와 유교의 상제님은 어떤 하늘에 계시는지, 왜 호칭이 상제님인지, 상 자는 무슨 뜻이고, 제 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호칭에 대한 문자적인 뜻과 그 속에 담겨 있는 본래의 뜻, 의도하고 있는 중심 뜻(central meaning)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 왜 각 종교에서는 이 우주의 지고신으로서, 통치자 하나님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절대자를 신앙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각 종교 문화의 신앙의 역사, 믿음의 역사, 신도 체험에 대한 내용과 과정에 대해 그 핵심을 제대로 알아야만 이 문제의 결론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각 종교 문화권의 신앙의 대상, 즉 그들이 말하는 구원자, 창조주가 과연 서로 다른지, 아니면 같은 분을 말하는 것인지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각 종교의 구원론의 결론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과연 그 일치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서양 기독교만 해도 ‘예수가 과연 이 우주를 창조한 아버지 하나님이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 대답은, ‘아니다!’ 이겁니다.


예수의 한 생애의 가르침, 3년 공생애의 결론이 뭡니까? ‘나는 내 스스로 온 게 아니다, ‘그분’이 나를 보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서 왔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가 말한 ‘그분’은 과연 누구일까요? 예수를 내려 보낸 ‘하늘의 아버지’는 과연 누구냐 이 말입니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그 아버지를 ‘상제님’이라 불러왔습니다. 불교는 이와는 달리 미래의 부처 ‘미륵불’이라 하고, ‘그분은 도솔천에 계신다, 도솔천의 하나님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기독교의 구원 사상에서는,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계와 대자연계를 주시하시며, 항상 관심을 갖고 구원해 주고자 하는 꿈과 강력한 의지와 원대한 설계도를 가진 하나님이 계신다고 했습니다. 유교, 도교에서는 그분을 ‘상제님’으로서 특히 더 강조를 합니다.


그런데 불교에는 그런 맛이 없습니다. 동서의 전문가들은 불교를 일컬어 ‘자력 종교’라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 직접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이 우주의 본성,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거예요. 자력과 실천, 내 몸으로 직접 부딪혀서 체험을 해야 하는 종교가 바로 불교인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불교의 결론은, ‘3천 년 뒤에 말법 시대가 온다. 그때는 석가 부처의 진리, 그 교법으로는 이 세계를 온전히 건져낼 수 없다. 그때 새로운 부처님이 오신다. 그분은 도솔천의 하나님이다. 도솔천 천주님이 직접 인간을 건지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미륵님이 오셔서 열어 주시는 새 세상을 울단월 세계라고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한마음으로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여는 세계, 모든 이들이 다 부처가 되고, 자연의 질서가 조화되어 사시가 고르게 되며, 새로 태어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새 부처님의 세계가 바로 미륵님의 구원의 세계상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세계 각 종교의 구원론은 한결같습니다. 분명히 일치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오늘 질문에 대해 정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제님께서 1871년에 이 땅에 오셔서 “내가 상제다. 내가 옥황상제다. 내가 미륵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제’, ‘옥황상제’, ‘미륵’이라는 말씀입니다. 상제님 말씀이 이와 같을진대 우리는 ‘상제’, ‘옥황상제’, ‘미륵’은 같은 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호칭은 각각 다르지만 같은 한 분이라는 것이지요.

만약에 호칭이 다르듯이 실제로 전혀 다른 분이 ‘미륵’으로, 다른 신이 ‘상제’로, 인격이 또 다른 신이 ‘옥황상제’로, 천상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전 인류가 함께 구원받는 소위 보편 구원, 온 인류가 한마음으로 사는 궁극의 이상 세계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특이한 점은, ‘서로 다른 인격신이 계신다.’는 가정은 각 종교의 신념 속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기독교인들은 ‘앞으로 마지막 심판 때 믿지 않는 사람은 다 죽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각 종교에서 말하는 식으로 서로 다른 신들이 나와서 구원을 한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마지막 심판 이후, 온 인류가 구원받은 자들이 세운 새로운 지상 낙원에서 또 다시 분열된 세상을 살아갈 것 아니겠습니까? 불교는 불교대로,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이슬람은 이슬람권대로 말이에요. 결국 인류가 염원해 온 궁극의 이상 세계가 통일의 세계가 아닌 또 다른 분열 세계가 된다는 거니까 전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이겁니다.


그것은 누구도 원치 않고, 또 각 종교의 신앙 체계에서는 도저히 허용이 안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 상식이나 믿음 속에서도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문제지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류에게 진정한 구원이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 종교의 구원의 주제이자 총 결론으로서, 인류가 깨달은 진리의 핵심 문제로서 각각의 절대자 호칭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호칭은 서로 다르지만 동양에서 신앙해 온 도솔천 하나님 미륵님과 상제님, 서양에서 말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전혀 다른 분이냐, 또는 같을 수 있느냐, 그런 가능성이 있느냐, 진짜 같은 분이냐 하는 문제를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 그렇구나. 그래서 같은 분이구나.’ 하든지, 아니면 ‘그래서 전혀 다른 분이구나.’ 하고 깨달음의 경계에서 알아야 합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각 종교에서 말해 온 메시아, 절대자가 아버지로 오시든지, 도솔천 천주님으로 오시든지, 상제님으로 오시든지 그분이 오시는 곳이 어디인지, 또 그때는 언제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각 종교의 경전을 바탕으로 정리를 해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유교의 결론


그러면 먼저 유교에서 전하는 우주의 절대자 강세 소식은 무엇일까요? 


유교의 우주론이라 할 수 있는 『주역』을 보면 이에 대하여 ‘모든 말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성자들의 ‘모든 말씀’, 인류가 깨달은 ‘모든 말씀’의 결론이 성언호간(成言乎艮), 즉 동북 간방에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절대자가 동북방으로 오신다고 하는 유교의 깨달음의 한 소식입니다.


그럼 주역에서 말한 동북방은 어디일까요?


서양은 문자 그대로 서쪽입니다. 중동(中東)은, 고대 사람들이 진정한 동방이 어디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 지역을 동쪽으로 알고 오리엔트(Orient : 근동)라 했던 것입니다. 동북방은 결코 아니라는 얘깁니다.


오늘날 지리학에서는 이 동북방을 극동(Far Eastern Asia)이라 합니다. 또 이곳은 모든 종교 문화의 원형이 살아 숨쉬고 있고, 지구촌의 모든 종교가 들어와 세계적으로 가장 번성한 곳, 그리하여 모든 종교의 진리 핵심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입니다. 불교의 원형이 그대로 살아 있고 핵심 가르침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 도교의 핵심을 알 수 있고 유교의 원형이 살아 있으며 기독교가 가장 강성한 나라! 이 정도면 대략 눈치를 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이 바로 『주역』에서 말한 동북 간방입니다. 우리 한국 땅에 우주의 절대자 상제님께서 직접 인간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 불교의 결론

둘째, 불교 가르침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불교의 「화엄경」이나 「미륵경」, 또는 「법화경」 등을 보면 ‘말법의 시대가 되면 미륵님이 동방 땅에 오신다.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에 오신다.’ 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20대 때 「화엄경」을 구하기 위해 서점엘 갔던 적이 있어요. 「화엄경」을 보면 입법계품에 불교의 이상적인 구도자 선재동자의 구도기가 나옵니다.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 세상의 숱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다가 마침내 미륵님을 만납니다. 그때 미륵님이 이 젊은 구도자를 암자로 데리고 가서는 문을 딱 열고 “저 안을 봐라!” 하십니다. 선재가 무심코 그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 작은 암자 속에 거대한 우주가 펼쳐져 있는 것 아닙니까.


이게 뭘 뜻하는 걸까요? ‘이제 그만 방황해라! 그만 돌아다니고 자리에 앉아서 네 마음의 문을 열고 봐라. 네 마음속에 이 우주가 들어 있다. 네 마음속에 천국이, 네 마음속에 이 우주의 화엄 세계, 조화 세계가 들어 있다!’ 그걸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미륵님의 또 한 가지 의도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나의 미래 세계다. 내가 앞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여는 낙원 세계다. 내가 유한의 지구 위에 무한의 조화 세계를 건설한다.’ 이것을 보여 주시려 한 것이지요. 미륵님이 앞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 이정표, 그 청사진을 조금 보여 주신 것이다 이겁니다.



▒ 기독교의 결론

끝으로, 기독교에서 말한 구원의 소식을 보겠습니다. 


기독교의 계시록에는 충격적인 소식 몇 가지가 있어요. 계시록을 보면 아버지 하나님이 흰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이, 당신이 보낸 아들 성자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사도 요한을 불러서 직접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 (요한계시록 1:8)


아버지가 아들의 제자를 불러서 새로운 인류 구원의 복음, 케리그마(kerygma)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내가 장차 내려갈 자다!” 라고.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이 내용을 곡해해서, “왜 보좌에 앉으신 분을 꼭 아버지라고만 해석해요? 삼위일체니까 아들 성자 하나님도 되죠. 또 성령 하나님도 되잖아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얘깁니다. 예수의 본래 가르침과 전혀 안 맞습니다. 아니, 아들은 분명히 아버지 보좌의 우측에 앉아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 보좌에 앉을 수 있느냐 이거에요. 기독교 구원론을 바르게 깨닫는 데는 이 문제가 참으로 중요한 관건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고, 내가 장차 내려가서 모든 걸 새롭게 한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증산도에서 말하는 가을 대개벽 소식입니다.


조금 전에 미륵님이 선재동자에게 이 우주의 조화 세계를 보여주셨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흰 보좌에 앉아 계신 아버지와 불교의 도솔천 하나님 미륵님의 도는 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불교로 말하면 3천 년 후(북방 불교는 갑인(甲寅, 1974)년이 불기 3천 년이 되는 해), 기독교로 말하면 2천 년대가 되면 종말론적인 심판의 시간이 가까워 온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동양의 미래의 구원자이신 도솔천 하나님 미륵불과 서양에서 말하는 아버지 하나님이 오시는 그 때와 장소가 같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는 계시록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무리가 동방으로부터(from the east) 오더라, 흰 옷을 입은 무리가 동방에서 나오더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불경(「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서는 “말법의 그때에 통일의 하늘에 계시는 미륵불이 바다에 둘러싸인 동방의 나라에 강세하리라.” 하고 미륵님 강세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간으로 오신 참하나님 상제님께서는 “언제나 동쪽에서 시작하여 동에서 마무리를 짓나니 너희들은 항상 동으로 힘써라.”(道典 3:306:9)고 하셨어요. 이것은 곧 동방, 동의 세계, 동의 문화(eastern culture)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끝에 질문한 “How many gods is Sangjenim? 도대체 상제님이 몇 분의 신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 하는 부분을 봅시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상제님이 미륵의 역할, 옥황상제의 역할, 아버지 하나님의 역할을 각각 달리 하는 것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전에 우리는 각 종교의 신앙 역사와 그들이 깨달았던 메시아를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또는 앞으로 오실 구원의 부처님으로, 상제님으로 표현하게 된 문화적 배경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각 종교에서 절대자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된 이유는, 그들이 살던 자연 환경과 부족, 민족 문화의 전통, 생활 방식, 언어 세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 우주의 지존자 하나님, 또는 앞으로 오실 인류의 구원자로서 새 부처님을 각기 다른 호칭으로 불러 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신앙 속에서 젖다 보니까 유교, 도교의 상제님과 불교의 미륵불, 그리고 유대 문화에서 태동한 천상 옥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 엘 샤다이, 엘로힘, 또는 기독교 신약의 아버지 하나님이 전혀 다르게 오직 그들만이 믿고 구원을 받는 보편자로서 하나님으로, 구원자로 가슴 속에 각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우주의 절대자이신 상제님에 대한 호칭이 다르다고 해서 각각 다른 역할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 하늘에 계신, 우주의 가장 높은 하늘에 계신 지존자 하나님을 각 문화권에서 서로 서로 다른 호칭으로 신앙을 해 왔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호칭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결론은, 상제님이 각기 다른 호칭으로 불려 왔다고 해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하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기 다른 동서의 문화권에서, 그 종교 문화, 도의 세계에서 특이한 문화와 역사 배경을 따라서 언어가 다르고, 또 절대자에 대한 인식과 문화와 깨달음의 색깔이 달라서 그렇게 모셔 왔고, 그런 특이한 신앙의 방식을 취해 온 것일 뿐 상제님이 각기 다르게 역할을 하신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Q┃ 상제가 하나님의 본래 호칭이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불러왔던 호칭이라면 더 친근하게 와 닿아야 하는데 오히려 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한민족의 문화는 신교였고 신교에서 삼신 상제님을 섬겨 왔어요. 그런데 이 뿌리 문화의 실상이 잊혀지고, 완전히 왜곡·말살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우주의 참하나님을 부르던 본래의 호칭인 ‘상제’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뒤집혀져 버렸습니다.


신교의 뿌리 문화 토양에서 태어난 도교, 유교, 또 민간 신앙에서 상제 문화를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식이 뒤집어져서, 뿌리 문화의 본래 하나님 신앙인 상제 신앙을 마치 유교, 도교 등에서 빌려온 것인 양 인식하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겁니다. 다시 말해서 신교가 제 1의 뿌리 문화인데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태어난 제 2의 줄기 문화인 유교, 불교, 도교와 서양 기독교의 구원관, 신관, 하나님관에 길들여져서 그릇된 상제 인식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난 19세기 후반,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를 회복하려는 역사의 몸부림이 있었어요. 마지막 왕조 조선의 비극의 임금 고종이 1897년에 이 상제 문화를 복원하기 위하여, 그리고 상제님의 참된 아들 노릇을 하고, 진정한 조선의 천자로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하여 아득한 예로부터 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던 제천단인 원구단(圓丘壇)을 쌓고 10월 11일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光武)라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최초애국가 


당시 애국가만 해도 오늘 우리가 부르고 있는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구절이 아니라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라 하여, 상제 문화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지난 20세기 초엽만 해도 팔팔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양 기독교의 『신약전서』가 번역되어 처음 출간된 1906년 당시의 성서를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상제지자(上帝之子) 야소(耶蘇)’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 우주를 다스리는 생명의 아버지 하나님을 본래부터 ‘상제’라 불러 왔습니다. 그 전통이 문서로 확인되는 것만 해도 4천 년 이전이요, 또한 우리 민족의 원형 문화를 알 수 있는 신교의 3대 경전인 「삼일신고」, 「천부경」, 「참전계경」의 역사를 소급해 들어가 보거나 신교 문화 시대인 한국-배달-조선의 역사 전통을 바르게만 이해하면 상제님에 대한 신앙의 시원 역사가 장장 1만 년을 소급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한민족이면서도 본래 우리들이 부르던 하나님의 호칭, 상제 문화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걸까요? 하나님이 상제님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상제님이냐?” 하고 오히려 반문을 하고, 쉽게 우리들 마음속에 와 닿지 않는 것일까요?


그 모든 원인이 우리 뿌리 문화의 원형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이렇게 큰 문제를 던져 주는 겁니다. 때문에 우리는 본래 우리의 역사인 삼신 문화, 삼신 상제님의 시원 문화, 잃어버린 고대 역사의 원 바탕인 환국-배달-조선의 시원 역사를 회복하는 참 역사 공부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제님을 제대로 알려면 상제님이 주관하시는 우주의 조화 세계, 삼신의 세계에 눈을 떠야 합니다.


동양에서는 원 대자연의 바탕이 되는 조물주를 삼신 하나님, 즉 얼굴이 없는, 형상이 없는 원신(元神, Primordial God)이라 하고, 상제님은 형상을 가지고 이 우주를 직접 통치하시는 천상 옥좌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상제님이 바로 이 우주의 삼신의 조화권을 직접 쓰시는 참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삼신을 제대로 이해할 때, 비로소 상제님께서 이 우주를 경영하시는 이법과 상제님의 실상을 깊이 있게 성숙된 진리의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Q┃ 증산도에서는 도조되시는 증산이라는 분을 상제님이라 부르는데 상제란 어떤 뜻이며 꼭 상제님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까? 또 가톨릭에서 말하는 천주님, 기독교 개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지금 이 질문은 사실 ‘상제’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어요. ‘상제의 뜻은 무엇인가? 왜 꼭 이 우주를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을 상제님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또 서양 구교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부르는 천주(天主)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하는 것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좋은 질문입니다

‘상제’는 우리말로 풀면 ‘천상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천상옥좌의 하나님, 천국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세상에서는 ‘제(帝)’ 자를 임금님 제 자로만 알고 있는데, ‘제’는 아주 예로부터 하나님 ‘제’ 자입니다, 하나님 ‘제’ 자. 이 하나님의 아들을 ‘천제의 자(天帝之子)’, 줄여서 ‘천자(天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광개토왕의 비문을 보면, 고구려를 세운 자기들의 태조 할아버지 고주몽 성제를 말할 때 바로 이러한 표현(我是天帝之子)을 쓰고 있죠.


그러면 왜 꼭 상제님이라 불러야 할까요? 상제는 무엇보다도 서양의 창조주라는 뜻보다는 통치자, 천상옥좌의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로 이 우주에 실재하시는 하나님의 참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겁니다.


『도전』 1편 1장 5절을 보면 상제님에 대해 가장 명쾌한 정의가 기록되어 있어요. 


‘상제는 온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 하느님이니라.’(道典 1:1:5)


상제님은 대우주를 다스리는 분이요, 이 우주의 이법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이 우주 질서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때, 왜 우주에는 상제님이 존재해야 하는가, 또 상제님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깨칠 수 있습니다.


증산도에서는 하나님을 상제님이라 부릅니다. 또 이 우주의 주관자, 우주의 주권자 하나님을 상제님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그 핵심은, ‘상제’가 본래 하나님을 부르는 우리의 언어였으며, 적어도 약 5천 년 전후부터 동양에서 이 우주를 다스리는 조화주 하나님을 불러온 시원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후일에 유교, 도교, 민간에서 이 ‘상제’라는 언어를 차용하여, 그들 문화가 탄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전해 내려온 하늘의 주재자 상제를 그대로 모시고, 그 신관을 계승하여 상제님이라 불러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로 상제님이다.’ 라고 할 때 “아, 그건 유교, 도교에서 말하는 옥황상제의 호칭이 아니냐? 왜 기성종교에서 부르는 호칭을 가지고 ‘하나님이 본래 상제님이다’ 이렇게 갖다 붙이는 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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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천주(天主)’나 ‘하나님’이라는 호칭, 또 상제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것은 참 곰곰이 생각을 해보아야 할 질문입니다. 


우선 천주란 말을 봅시다. 동양에서 이 말을 제일 먼저 쓴 인물이 3천 년 전에 은나라를 무너트리고 주나라를 연 문왕과 그의 아들 무왕을 보필했던 강태공입니다. 그는 후일에 산동성의 왕으로 봉작을 받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문화에 팔신제(八神祭), 천제(天祭) 문화를 뿌리 내릴 때, 이 우주의 주신(主神)들을 천주(天主), 지주(地主), 병주(兵主), 양주(陽主), 음주(陰主), 월주(月主), 일주(日主), 사시주(四時主) 등 여덟 개의 범주로 나누어 모셨죠. 이 때 천주란 하늘의 주신(主神)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천주라는 언어를 인용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 서양의 가톨릭 예수회에서 동양 전도를 위해 오신 마테오리치 신부님이 『천주실의(天主實義 : 천주님의 참뜻)』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이 17세기 초 청나라를 다녀온 외교 사절단에 의해 조선에 유입되어 18세기 중엽부터 이익, 홍대용 등 실학자에 의해 학문적으로 탐구되다가 1784년(정조8) 3월에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의 천주교 북당(北堂)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를 받고 귀국하여 전도를 시작하면서부터 가톨릭이 신앙으로 뿌리를 내려 천주교(天主敎)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에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서양의 천주 문화가 동학의 창도자인 최수운 대신사에 의해 수용되어, 이 천주님이 머지않아 이 세상에 인간으로 강세하신다는 것을 선포한 시천주(侍天主) 문화로 수용되었어요. 그리하여 ‘이제 인간으로 오시는 천주님을 모시고 새 우주의 조화를 정하는 역사를 맞이한다. 인류가 개벽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선언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개신교의 ‘하나님’은 문자 그대로 ‘이 우주의 신은 한 분’이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입니다. 개신교의 하나님 신관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먼저 기독교 본래의 신관,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다시 말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지금 서교에서 쓰고 있는 천주와 하나님은 같은 뜻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주의 현실 역사에서는 구체적으로 세 위격,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으로 역사하시는데 그 아버지가 바로 이 우주의 주관자로서 상제님이십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 역사에서는 이미 구약 때, 아버지 하나님을 천상옥좌에 계시는 우주 대권자로서, 인격신으로서, 우주의 통치자 주신으로서 인식했던 중요한 믿음의 전통과 기도 문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동서양의 다른 점은, 서양 기독교 하나님관은 창조주로서, 또 이 우주의 초월적 하나님으로서 대단히 강력한 신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동양 문화에서는, 그보다 수천 년 전부터 섬겨온 이 우주의 진정한 하나님은 우주의 통치자로서 상제님이다, 상제님은 음양적으로 천지의 질서를 바탕에 깔고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동방 문화에서는 하늘을 자연의 하늘과 상제님의 하늘, 즉 자연천(自然天)과 상제천(上帝天)으로, 음양적으로 인식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대우주는 상제님의 천명(天命)과 의지에 의해 둥글어 간다. 이 우주의 중심에는 상제님이 계신다. 만물은 상제님의 천명을 받아 태어나고, 그 천명을 받들고 참되게 깨쳐 성취하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지고한 덕목으로 삼는다.’는 천명의식을 바탕으로 역사를 운영해 왔던 것입니다.


그 한 예로 유교의 뿌리는 공자가 가장 이상으로 삼았던 주나라의 문화 제도입니다. 주나라는 상제님의 명을 받아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천자국이 되었는데, 주나라의 상제님 신앙이 바로 유교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유교 문화의 핵심은 상제님의 천명을 받는 것이요, 그 천명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고 상제님의 뜻을 바르게 펴는 이상적인 나라를 세우는 것이 궁극 목적인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Q┃ `증산(甑山)`이란 존호가 별다르게 느껴지는데 어떤 특별한 뜻이라도 담겨 있습니까? 




그럼 먼저 존호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존호란 만인이 쉽게 부르는 이름을 말합니다. 상제님은 당시 태어나신 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시루산의 이름을 따서 한자로 시루 증(甑) 자, 뫼 산(山) 자, 증산(甑山)이라는 존호를 쓰셨습니다. 상제님께서 탄강하신 고부의 시루산은 곤륜산에서 백두산으로, 금강산, 지리산을 거쳐 호남의 삼신산(정읍의 두승산, 고창의 방장산, 변산의 봉래산)의 지기가 열매 맺은 곳입니다.


그러면 ‘증산’이라는 존호에는 어떤 특별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요?


중요한 것은 상제님께서 존호에 시루 증 자를 쓰셨다는 것입니다. 시루가 뭡니까? 이것은 참으로 독특한 동방의 음식 문화의 상징입니다. 영어로는 라이스 케이크 스티머(rice cake steamer)라고 하지요.


서양에는 떡 문화가 없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떡은 동방의 제사 문화에서 아주 중요한 음식입니다. 그 떡을 쪄 내는 그릇이 바로 시루입니다. 쌀과 오곡 여러 가지를 넣고 푹 익혀서 인간이라면 누구도 먹어 보고 “야! 참 맛있다, 멋지다!” 하고 감탄을 할 정도로 맛있는 떡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우주의 참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존호를 시루 증 자, 뫼 산 자, 증산(甑山)이라고 하셨습니다. 


시루의 기능은 익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숙을 뜻하지요. 상제님이 존호에 시루 증(甑) 자를 취하신 것은,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으로서 인간 몸으로 오실 때, 인간 문화의 궁극적인 성숙과 인류 구원의 목적을 완성한다는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시루는 하나님의 정신과 존재 목적을 표상합니다.


상제님은 “세상에 시루만큼 큰 그릇이 없나니, 황하수의 물을 길어다가 부어 보아라. 아무리 부어도 시루에 물을 못 채울 것이다.”(道典 2:38:4)고 하셨어요. 이 말씀은 곧 ‘인간 역사상 인간으로서 가장 도량이 큰 인물은 이 우주의 통치자인 나다!’ 하는 상제님의 도의 그릇을 상징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호의 유래는 또 다른 역사적 사건과 더불어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익히 알고 있듯이,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 상제님에게서 직접 도통을 받은 진표 도승이 서기 600년에 창건된 전라북도 김제의 금산사에 금미륵불을 세울 때, 거대한 솥(甑)을 조성하고 그 위에 미륵불상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로부터 이 땅의 큰 산을 흔히 시루산, 시루봉이라 불러 왔습니다. 이곳 대전의 보문산도 가장 높은 봉을 시루봉이라 하고, 동방의 조종산인 백두산도 일명 시루산이라 불렀습니다. 지금도 전국에는 시루봉이라는 이름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상제님의 존호에는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인류 구원을 완성하신다는 구원의 방식과 목적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당신님이, 신격과 도격이 이 우주에서 가장 높으신 지존자의 보좌에 계시다는 것과, 세계 만물 통치의 심법이 어떠하다는 것이 깃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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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불이 솥 위에 서 있는 이치


자, 『도전』 2편 67장 2절을 봅시다. 상제님께서 인류를 구원하는 방식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미륵불이 어찌 모악산에 있을까? 또 어찌 금산사 삼층전에 있고 솥 위에 서 있으며, 용(龍)이 없는데도 어찌 여의주(如意珠)를 손에 받고 있을까? 잘 생각해 보라. 이 이치를 알면 용화세계를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道典 2:67:1~3)


미륵불이 솥 위에 서 계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내가 아주 이 세계를 푹 익히겠다는 것 아닙니까? ‘선천 상극 도수에 걸려 원과 한을 맺고, 그 시비와 고통의 바다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 창생들의 정신과 몸을 내가 푹 익혀서 가을 우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는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도리가 이 속에 들어있다 이 말입니다.



▒ 상제님은 천지병을 고치시는 분


그러면 상제님은 이 세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익혀서 새로운 세상을 여실까요? 


인간 문화의 모든 요소들이 아직 성장의 과정에 있다, 원숙한 성숙기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인정을 하고 있어요. 불가에서는 그동안 천만 명 가운데 한 명이 도통했다고 하니 깨달음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서양의 기독교나, 유교, 도교에서도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상제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로잡으신다는 겁니까? 인류의 정치, 경제, 종교, 신앙을 통해 궁극의 진리를 체험하는 것, 이 세상을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 등 모든 인간의 삶의 문제를 바로잡는다고 하셨습니다.


『도전』 3편 15장을 보면, 당시 다리에 병이 생겨 잘라내야 할 위기에 처한 김자현 성도가 김형렬 성도의 인도로 상제님 도문에 들어올 때, 김형렬 성도가 이런 얘기를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 이런 병이 뭐 대수인가. 병은 천지병(天地病)이 큰 병이지 이런 병은 병도 아니네. 그분은 천지병을 고치시는 분이라네.”(道典 3:15:6)


이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제님은 인간이 병들지 않을 수 없는 그 근본 원인인 하늘땅의 병을 고치는 분입니다. 이것이 증산도 진리의 가장 큰 매력이지요. 선천의 어떤 종교에서도 결코 맛 볼 수 없는 인류 구원의 방식, 인간 문제의 진단, 그 궁극의 해결 방법인 것입니다.



▒ 만국의원을 열어 세상 병을 고치리라


그리고 상제님은 시루산(甑山)이라는 존호의 뜻 그대로 이 세계의 성숙을 위하여 ‘내가 이렇게 이 세상 병을 고쳐서 바로잡겠다.’고, 그 방식에 대해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 『도전』 5편 249장 말씀을 봅시다.


“한 지방의 병만을 막아도 아니 될 것이요, 온 세상의 병을 다 고쳐야 하리라. 또 한 때의 병만을 막아도 아니 될 것이요, 천하 만세의 병을 다 고쳐야 하리니 이로써 만국의원을 개설하노라.” (道典 5:249:12~13)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상제님이 지난날 석가, 공자, 예수를 비롯한 동서의 성자들과 그들 이전 태고 시절의 원시 신성들, 부처와 보살들, 그리고 천지 안의 모든 신명들이 “오직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면 이 세상을 근원적으로 건져낼 수 없습니다.” 하는 하소연을 들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 왜 하필 세상 사람들도 잘 모르는 시루 증 자를 쓰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 상제님은 시루가 상징하는 가을의 열매, 성숙의 도, 가을의 참 정신을 표상해서 인간 역사 속에 들어오셨구나!’ 하고 그 배경을 깨달을 수 있다 이 말입니다.

Q┃ 증산 상제님께서 지구촌의 수많은 나라를 제쳐두고 동방 한국 땅에 강세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주의 하나님이 우리나라로 강세하셨다고 믿는 것은 민족주의적인 발상 아닌가요? 상제님이 한반도에 강세하신 배경이 무엇입니까? 



상제님은 왜 한국 땅에 강세하셨을까? 이것은 증산도의 구원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누구나 한 번씩 단골 메뉴로 던지는 질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도담을 나눠 보면, “증산도는 너무 민족주의적입니다. 증산도 사람들은 너무나 한국을 중심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러고는 “증산도 하면 한국의 민족 종교잖아요. 한국의 종교를 대표하는 것이 동학과 증산도 아닌가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마디로 증산도를 모르고 하는 얘깁니다.


오래 전에 대구에서 대강연회를 했을 때, 그 지역의 대표적인 신문 기자가 찾아와서 진리 말씀을 다 듣고 나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야~, 증산도는 과연 우주 종교군요!” 그 기자의 말과 같이 상제님은 한민족만의 상제님이 아니라 동양 사람의 상제님이자 서양 사람의 상제님이요, 온 인류의 상제님입니다. 나아가 대우주의 하나님, 온 우주의 통치자로서 상제님입니다.




상제님이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일진대, 그렇다면 왜 지구촌의 그 넓은 땅을 두고 이처럼 작은 동방 한국 땅으로 꼭 오셔야만 했을까요? 지금부터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상제님 말씀으로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지금으로부터 135년 전, 당시의 역사적 현실 때문에 상제님께서 조선으로 오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 함께 『도전』 5편 4장을 봅시다. 


상제님께서 “이제 동양의 형세가 누란(累卵)과 같이 위급하므로 내가 붙들지 않으면 영원히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리라.”(道典 5:4:6)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164장에서는 “조선 강토가 서양으로 둥둥 떠 넘어가는구나.”(道典 5:164:2)하시고, 377장에서는 “동양 기운이 떠내려간다, 빨리 당겨라! 동양이 서양으로 떠밀려 가느니라.”(道典 5:377:2)고 하십니다.


19세기 후반, 서양 제국주의 열강들은 동남아시아, 중국을 거쳐 동북아의 중심 센터인 한반도 조선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미국, 영국, 독일, 불란서 등 서구 열강과 동양의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에 의해 동북아의 작은 땅 조선은 인류 역사상 새로운 분쟁의 중심지로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위급한 때에, 상제님은 누란의 위기에 처한 한민족을 건지시기 위해 조선 땅으로 오신 것입니다.




둘째, 상제님은 섭리적으로, 자연의 이법으로 이 땅에 오시게끔 정해져 있습니다.


상제님은 특히 이 통토(東土)와 인연이 있다고 하시며 ‘동(東)’을 참으로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지리를 그렇게 강조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실 때면 고개도 동쪽으로 먼저 돌리시고, 항상 첫걸음을 동쪽을 향해 내디디셨습니다.


이 동을 주역에서는 동북 간방(東北艮方)이라 하고 요즘 말로는 극동 아시아(Far eastern Asia)라고 합니다. 동방의 역 철학에서는 하늘보다 땅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본래 생성(生成)이라는 말이 천생지성(天生地成), 하늘은 낳고 땅은 이룬다는 말에서 나왔죠. ‘땅에서 모든 것이 완성된다.’ 이것이 정말로 중요한 동양 문화의 자연관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동서 문화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럼 모든 변화가 완성되는 그곳은 어디일까요? 주역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성언호간(成言乎艮)이라, 동북 간방(艮方)에서 모든 동서 성자들의 말씀, 구원의 약속이 이뤄진다.’는 구원의 소식입니다.


이에 대해 종도사님께서는 지리학적으로 여러 차례 말씀을 해 주셨지요. ‘한국은 지구의 생명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혈 자리다. 지구의 혈이 바로 한반도다. 지구의 조종(祖宗) 곤륜산에서 맥이 뻗어 나와 동북아의 백두산이 중조(中祖)가 되어 금강산을 맺었다. 그 금강산의 맥이 호남의 삼신산으로 해서 시루산에 맺혔다. 상제님은 지구의 지기가 수렴된 이 시루산으로 오신 것이다. 지구가 태초에 형성될 때부터 이미 시루산에서 삼신 상제님이 오시도록 그렇게 정해져 있다.’고 말입니다.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해 볼까요?


먼저, 백두산을 주산으로 하여 좌측으로는 일본이, 우측으로는 중국 대륙이 각각 좌청룡, 우백호가 되어 한반도를 감싸고 있어요. 그리고 아래 타이완 해협이 물이 빠지는 파(破)에 해당하고, 저 바깥으로 7억이 사는 아프리카 대륙이 외백호요, 아메리카 대륙이 외청룡으로 또 한 번 크게 감싸고 있습니다. 내·외 청룡, 내·외 백호가 각각 음양 짝이 되고, 남반구에 있는 호주 대륙이 안산(案山)이 되어 지구의 혈, 중심 핵 자리인 한반도를 완전히 감싸고 있습니다. 지리학의 이치 또한 이와 같을진대, 하나님이 과연 어디로 오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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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상제님은 조선 민족의 ‘신을 섬기는 문화’ 때문에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사실 인류 문화사에서 한민족처럼 신을 잘 섬기는 민족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국조가 됐든, 선영신이 됐든, 지역의 신명이 됐든, 또 비를 내려 주는 우사 신명, 산신, 바다의 용왕, 칠성신이 됐든, 자연신이 됐든 인격신이 됐든, 어떤 신이든 그렇게 잘 섬깁니다. 


서양에서는 유대족이 하나님을 참으로 잘 섬기잖아요? 사실 그들도 본래는 다신 풍속에 길들여져 있었는데 점점 유일신 문화로 변화된 것입니다. 어쨌든 기도도 잘하고 자기들의 하나님만큼은 기막히게 잘 섬기는 신앙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문화’ 하면 그들보다 역사적으로 더 뿌리 깊은 민족이 동방의 우리 한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은 인류 역사상 인간이 체험했던 삶을 이롭게 하는 모든 신들을 다 수용하여 섬긴 것입니다.


이에 대해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조선과 같이 신명(神明) 대접을 잘하는 곳이 없으므로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각기 소원을 따라 꺼릴 것 없이 받들어 대접하리니 도인(道人)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천하사(天下事)만 생각하게 되리라. 신명들이 조선 땅에 삼대 들어서듯 가득 차 있어 사람이 지나가면 신명들이 길을 비켜 주느니라. 그러니 침을 뱉어도 고개를 숙이고 발부리에 뱉어라.”(道典 2:36:2∼6)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결국 무슨 말씀일까요? ‘한민족은 동서의 모든 민족과 종교에서 섬기는 신들을 다 포용할 수 있는 민족이다. 그래서 신관 통일이 가능하다. 동방 한민족은 이 우주의 지고신인 아버지 하나님, 상제님뿐만 아니라 모든 신들을 다 섬겨 왔기 때문에 신명들이 너무도 감사해서 이 조선 땅으로 다 모여들었다. 천지 안의 모든 신명들이 하나님 사업에 수종들어 가을 우주 개벽기에 인류를 건지기 위해, 상제님이 오신 이 땅에 모여 들어 있다. 천지신명들이 조선 땅에 아주 꽉 들어차 있으니까 침도 함부로 뱉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신명들을 잘 섬겨온 우리 민족의 보은 줄을 따라서, 그 신명들을 다스리시는 통치자 하나님, 상제님께서 이 땅에 강세하시게 된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한민족으로 꼭 오셔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하나님은 근원을 찾으십니다. 역사의 근원, 문화 생성의 근원, 신앙의 뿌리를 찾아 머무시는 분입니다. 


상제님은 당신께서 이 동토(東土)와 인연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인연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조선이 천지신명들의 통치자이신 상제님을 신앙하는 상제문화의 시원 국가라는 점입니다. 즉 우리 조선은 유불선 기독교, 도교 등 세계 종교 탄생의 시원문화인 신교(神敎)의 종주국이요, 인류의 뿌리 문화인 신교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동방의 유일한 주인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인류의 뿌리문화, 신교문화, 원형문화의 맥을 가지고 온 민족이지만 유불선·기독교 등 제 2의 세계 종교를 신앙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다 부정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에 와서는 한국인 중에 상제문화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길거리에서 누구에게 “상제님이 누구신지 아세요? 상제라는 말을 들어봤어요?” 하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백에 하나, 천에 하나나 있을까? ‘상제’ 하면 무당, 점쟁이들이 믿는 신, 중국 사람들이 섬기는 신 정도로나 알고 있습니다.


이 상제문화를 회복하려고 한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죠. 그게 뭐냐 하면,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왕 고종임금이 1897년에 지금의 조선호텔 자리에 원구단을 쌓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로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에 이르게 된 것이죠. 





서양사를 보면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이 됐지만, 사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주로 그리스 사람, 헬라인이었습니다. 기독교 문화의 뿌리는 중동의 유대 문화였으며, 그 뿌리는 바로 유대인들의 시조 아브라함이 살던 지금의 이라크 땅, 즉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수메르 문명입니다. 그 수메르 문명 또한 검은 머리의 동방 사람들의 문화로부터 왔으며,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의 동방 배달 문화와 직접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도전』 1편 1장을 보면, ‘한민족은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道)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道典 1:1:1∼9) 하는 구절이 있어요.


우리 한민족의 국통은 환국-배달-조선-북부여-고구려-고려, 마지막 왕조 조선, 상제문화를 다시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한 고종 황제의 대한제국,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상제님은 인류 문화사의 뿌리, 상제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오신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답은 오직 하나, 가을문화를 출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초목은 뿌리를 바탕으로 줄기가 뻗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우주의 창조 법칙입니다. 인류문화도 이와 같아요. 뿌리 없이는, 뿌리를 복원하지 못하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인류의 통일문화, 가을의 결실문화, 열매문화를 출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상제님은 우주의 유일자이신 우주의 조화옹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서교에서도 “The Father who is coming.”장차 오실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했죠. 그 아버지 하나님이 인류의 뿌리 문화의 맥을 따라 오신 것입니다.


이처럼 증산 상제님께서 동방 조선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 한민족이 동서 문화를 통일할 수 있는 뿌리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동방 한민족 신교의 토양에서 유불선·기독교의 강력한 신앙 문화가 꽃피었기 때문에, 뿌리 · 줄기 문화 시대를 지나 인류문화의 통일 · 결실기를 맞아 열매문화, 보편적 구원의 진리를 열어 주시기 위해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상제님은 단순히 우리 한민족이 서양 제국으로부터 멸망당하는 위기에 처하였기에, 약해 빠진 한민족을 먼저 건지시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리적, 문화 역사적인 총체적 이유 때문에 조선 땅으로 오신 것입니다.

Q┃ 상제가 하나님의 본래 호칭이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불러왔던 호칭이라면 더 친근하게 와 닿아야 하는데 오히려 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상제님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Q. 상제님이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면 천상에 계시면서도 모든 일을 뜻대로 하실 수 있을 텐데 왜 친히 인간으로 오셔야만 했나요? 그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A.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인간으로 오셔야만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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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는 『도전』 2편 17장에 있는 상제님 말씀이 한 가지 답변이 될 것입니다. 즉, 당신께서 내려 보내신 석가, 예수, 공자 또는 선천 동서 문화권의 어떤 종교에도 ‘앞으로 오는 가을우주 개벽기에 인간을 건져낼 수 있는 아무 방책이 없으므로 천지신명들이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여 오매 내가 이를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이 세상에 직접 내려오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인간의 역사는 우주 1년 사계절 가운데 선천 봄여름 최후의 시간대인 여름철 말에서 가을로 전환하는 대개벽기에 처했습니다. 상제님이 왜 구원의 주체로서 인간의 역사 속에 오셔야 하느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가을 개벽기 상제님의 강세는 선천의 성자들을 통해 꾸준히 준비되어 왔습니다. 서양 기독교에서는 2천 년 전부터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한 기도 생활을 통해서 아버지와 하나 되는 공부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체험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불교도 그렇습니다. 불교에서도 미륵불이신 상제님의 강세를 전하기는 하였으나, 상제님에 대한 사실을 뒤집어 버렸습니다. 즉, 천상에서 석가모니 부처를 내려 보내신 도솔천 하나님, 미래에 인류를 총체적으로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새 부처님인 미륵님을 석가모니 당대의 제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 하나님이신 상제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선천 성자들은 ‘마침내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다’는 한소식을 전하기는 했지만, 천상의 지존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배경을 통해서 인간으로 오시고, 인간으로 오셔서 어떠한 권능으로 구원사업을 펼치시느냐 하는 데 대해서는, 제대로 된 가르침을 전해주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선천 종교의 깨달음의 한계요 구원론의 문제점입니다.
 
혹자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아, 상제님이 직접 이 세상에 오시지 않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천상에서 인류 구원사업을 펼치셨다면 시간상으로도 좀더 일찍 인류가 구원되었을 것이고, 또 상제님의 수고도 훨씬 덜하지 않았겠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한마디로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의 역사가 무엇인지 전혀 통찰하지 못한, 참으로 유치한 질문입니다.
 
 
문. 하나님이 왜 꼭 인간으로 오셔야만 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답. 하나님이 왜 꼭 인간으로 오셔야만 하는가?
 
첫째는 가을 개벽기를 맞아 이 우주 변화의 목적, 창조의 이상이 하늘이 아닌 땅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생성(生成)’이라고 말합니다. ‘생성’은 본래 천지론(天地論)에서 나온 말입니다. 도덕이 천도지덕(天道地德), 개벽이 천개지벽(天開地闢)이라는 말에서 온 것처럼 ‘생성’은 ‘천생지성(天生地成)’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천생지성, 하늘은 낳고 땅은 이룬다, 완성한다, 땅에서 모든 것을 성취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상제님이 꼭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땅 위에서 인류 구원사업을 이루셔야 하는 이유는 바로 천지(하늘과 땅) 변화의 상호관계 때문입니다. 하늘은 생명을 내려주고 땅은 그 기운을 받아 생명을 낳아 길러서 완성을 시킵니다. 성숙을 시키는 것이지요. 이러한 천지 이법 때문에, 상제님이 천상옥좌에서 천지대권을 집행하시는 절대자요 우주의 조화주 하나님, 통치자 하나님이실지라도, 인간의 총체적인 구원을 위해서는 마침내! 꼭! 반드시! 인간으로 오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선천 오만년 인간역사 속에 누적돼 온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하늘이 아닌 땅에서만 끌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의 역사 속에 맺히고 쌓인 수억 조 만엽의 문제들을 끌러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이 되어 인간의 길을 걸으시고, 인간적 삶을 통해 그 문제들을 직접 체험해 보심으로써 구원의 최선책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상제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병든 천지를 바로잡아야 된다.(道典 2:58:2)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서 전란이 그칠 새 없었다.(道典 2:17:2)
지금은 온 천하가 가을 운수의 시작으로 들어서고 있느니라.(道典 2:43:1)
 
 
이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정한 인간 구원이란 인간의 문제만 가지고는 도저히 이룰 수 없습니다. 병든 천지, 즉 선천 상극의 천지 질서부터 바로잡음으로써만 인류를 근원적으로 건져낼 수 있습니다. 가을 개벽기에 오신 상제님께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류구원의 새로운 주제로 선포하심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친정시대를 현실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세수 서른한 살 되시던 신축년, 1901년 음력 7월 7일 신천지 대도통문을 여신 후 “신축(辛丑: 도기 31, 1901)년 이후로는 내가 직접 이 세상을 맡아서 다스린다.”(道典 4:3:7)고 천지에 선언을 하셨습니다.
 
문. 상제님이 아니면 인간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건가요?

답. 만약에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시지 않았다면, 지상의 인간은 천상 호천금궐 보좌에서 우주를 통치하시는 진짜 하나님이 계시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서교의 일부 영적 지도자나 신도들, 동양의 도가나 유가에서 좀 트인 사람들 몇이 ‘천상보좌에 하나님이 계신다, 상제님이 계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상제님이 계신지, 진정 상제님이 인류를 건질 수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으신지, 상제님이 인류구원의 뜻을 가지고 계신지, 이런 문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상제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오직 인간에 의해서 끌러지고, 인류 역사 또한 인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천상에서 당신이 보낸 성자들이 인간으로 와서 동서양 각 문화권에 가르침을 내려준 것처럼, 아무리 천상의 지존자 하나님이시라 할지라도, 선천 봄여름의 문화를 추수하시기 위해서는 꼭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의 길을 걸으십니다. 그리하여 인류가 ‘아,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셨구나.’ 하는 깨달음을 통해 상제님 진리를 받아들이고, 또 그 진리를 생활화하여 지상에 아버지의 조화선경을 건설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을 문화를 여는 인간역사의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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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서 인간역사는 숱한 인간의 피와 땀, 희생을 통해 인간의 손으로 우주 1년 생장염장(生長斂藏)의 도를 지상에 펼쳐 나가는,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궁극의 이상 세계를 지상에 건설해가는 과정입니다. 때문에 상제님의 도법, 상제님의 진리를 제대로 소화하여 세상에 끊임없이 선포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이신 상제님의 도를 받은 일꾼들의 참으로 위대한 과업인 것입니다.
지금 이 질문은 첫째, 중동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반목, 처참한 살육 참사의 두 주인공인 이슬람 민족과 유대 민족의 신인 알라와 여호와를 어떻게 보느냐, 즉 알라와 여호와가 과연 상제님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세계 대종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신들이 곧 상제님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슬람교의 알라신을 말하다 보면 유대교의 여호와신이 동시에 제기됩니다. ‘알라(All h)’라는 말에서 ‘알(All)은 ‘The only God,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야훼(Yahweh)’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문자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동 지역에서는 이슬람교 이전에도 일신교(一神敎)의 관념이 있어서 알라신도 ‘지상신(至上神)’으로 숭배된 적이 있었으나 아랍인들이 특별히 숭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알라와 여호와가 천상보좌에 앉아 대우주를 통치하시는 참하나님, 상제님을 말하는 것인가?
 
사실 이 문제는 대단히 조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알라신이 됐든 여호와신이 됐든, <구약>에서부터 분명히 온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The Maker, Creator]’로 기록돼 있고 지금도 그렇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약>의 서두를 보면 여호와나 알라신은 안 나오고, 그냥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다’ 이렇게만 나옵니다. 그런데 뒤에 <모세 오경>을 읽어가다 보면 갑자기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툭 튀어나옵니다.**
 
학자들은 “지금 중동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각각 섬기는 신들이 그 근원은 같은 한 신인데 이름은 서로 다른 표기로 ‘여호와’ 또는‘알라’로 말한다.”고 얘기합니다.
 
물론 그 신격은 앞으로 가을개벽과 더불어 구체적으로 드러날 테지만, 그들은 각각의 조상신인 여호와와 알라신을 그들 민족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섬기는 여호와(알라신)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요 아랍족의 하나님이며, 동시에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다. 온 우주의 아버지 하나님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 그럼 그들이 그토록 믿어 온 우주의 진짜 창조주 하나님은 과연 누구입니까?

답. 바로 상제님입니다.
여호와는 분명히 유대족의 하나님입니다. 구약을 보면 여호와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출애굽기 3:6)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신원을 선언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그리고 모세의 <십계명>을 보면,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출애굽기 20:5),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스가랴 8:9)고 합니다. 여호와는 바로 전쟁신(軍神)이다 이거예요. 구약은 사실 전쟁의 역사입니다. 타 민족으로부터 유대민족을 건져주는 전쟁신의 역사지요.
 
그 하나님이 그의 구원 사업을 이루어나가는 중심 민족, 당신의 기업(基業)을 이어 받는 장자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 믿음의 역사에서 말하는 하나님관입니다.
 
두 번째 질문, 알라신과 여호와 그리고 다른 세계의 대(大)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상제님을 말하는 것일까요?
 
선천 동서의 각 문화권, 즉 유교, 도교, 인도의 불교, 중동의 유대교, 또 같은 뿌리에서 나온 이슬람의 알라신 문화, 그리스의 신의 세계를 보면 지극히 높으신 대우주의 창조주 하나님, 최고신에 대해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질문은 특히 중동 문화권의 알라신과 여호와가 진정한 이 우주 최고의 하나님이냐는 것인데, 우선 분명한 것은 그들은 오랫동안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섬긴 신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확고한 그 신앙의 토대 위에서 그들의 역사를 만들어 왔던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으로 오신 아버지 상제님께서는 ‘그것은 신격에 문제가 있다!’고 분명하게 지적을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세계 평화를 근원적으로 확립하는 데 있어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의 하나로 말씀하셨습니다.
 
대개 예로부터 각 지방에 나뉘어 살고 있는 모든 족속들의 분란쟁투는 각 지방신(地方神)과 지운(地運)이 서로 통일되지 못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이제 각 지방신과 지운을 통일케 함이 인류 화평의 원동력이 되느니라. (道典 4:18:1∼2)
 
동서양의 각 민족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이 자기들의 조상신이면서 동시에 우주의 최고신, 하나님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상(은)나라의 문화는 동방의 시원문화 계열과 상통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섬긴 최고신인 하나님 ‘제(帝)’가 후대까지 ‘상제님’으로, 신앙의 역사 전통이 일관되게 지속돼 왔습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의 경우는 엄격히 말하면 그 신관의 체계가 <구약>과 <신약>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창세기 첫 문장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입니다. <구약> 첫머리에서는 분명히 본래의 조물주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The Maker]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쭉 나가다가 어느 부분에 이르면 갑자기 ‘야훼’가 나옵니다. 그러다가 <신약>으로 넘어가면 ‘야훼’라는 호칭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아버지(The Father)’로만 나옵니다. 본래 온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로서의 하나님으로 신관이 복귀된 것이지요. 원시반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유대민족은 본래 그들의 신앙 선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 민족의 하나님 야훼신과의 계약에 의해 그들의 독특한 신앙의 역사를 만들어온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동서의 각 민족, 또는 세계 종교에서 섬겨온 신은 궁극으로는 같은 한 분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앞으로 오시는 도솔천 천주이신 미륵님, 유교에서 말하는 상제님, 도교에서 말하는 옥황상제님, 기독교에서 말하는 아버지 하나님은 다 같은 한 분입니다.
 
만일 각 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전혀 서로 다른 분이라면 인류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분들이 독립적으로 달리 존재하는 실재들이라면, 그리하여 각 문화권에 따라 구원을 달리 받아야 한다면 그 구원은 인류가 학수고대해 온 보편의 구원이 아니며, 인류는 이로부터 더욱 큰 상처를 받고 지금보다 더 큰 분열의 시대를 맞이할 테니까요. 즉, 오늘의 이 세계가 서로 다른 신으로부터 독자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이 세상의 분열상은 더욱 깊어지고 대립 또한 가속화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상제님께서 미륵부처님으로, 옥황상제로, 아버지 하나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문. 그러면 상제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해 주셨나요?

답. 여기서 상기해야 할 것은 “선천은 삼계가 닫혀 있는 시대다.”(道典 4:6:1) 라는 상제님 말씀입니다. 지난 선천 생장과정에서는 하늘도 땅도 인간도 닫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늘도 동서간에 교류가 없었으며, 땅에서도 동서의 문화권이 서로 넘나들지 못하여 각 문화권에서 섬긴 신들 또한 교류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영향으로 인해 인간도 자기 민족의 하나님을 우주의 창조주 신으로 섬기는 신앙관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을 대개벽기를 맞이하여 인간으로 오신 아버지 상제님께서는 그러한 각 민족의 주신을 지방신(地方神)으로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상제님은 서양 문명의 근원인 슈메르 민족의 아느(Annu), 서양 그리스의 제우스신, 유대의 여호와, 이슬람의 알라신, 인도에서 창조주신 브라흐만의 현신으로 신앙해 온 그들의 삼신 하나님 브라만, 비슈누, 크리슈나, 또 중국에서 조물주로 섬기는 한족 역사의 창립자 반고(盤古)신, 일본에서 천지 부모신으로 섬기는 아마데라스 오미까미[天照大神] 등 이들 지방신을 통일하는 것이 인류 화평의 원동력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각 민족의 하나님들이 전부 우주의 하나님이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는 바, 상제님이 이것을 지방신관으로 통일해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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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상제님이 우주를 주재한다’는 것과 ‘우주는 무위이화로 돌아간다’는 것 사이에는 약간의 모순이 있는 듯합니다. 하늘에 스스로 자존하는 이치가 있다면 왜 꼭 상제님이 계셔야 합니까? 우주의 주재자는 자연섭리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시나요?
 

A. 지금 이 질문은 포교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첫째 질문에서 상제님이 우주를 주재하신다고 하는데 대자연은 스스로 인과율에 의해 돌아간다고 하면 모순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이 대자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한 음양의 도에 의해 양의 시간인 봄여름이 가면 음의 시간인 가을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양의 시간인 봄여름이 옵니다. 그 이상 더 정교한 기계가 존재하지 않고 그 이상 더 정확한 슈퍼컴퓨터가 있을 수 없는,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이법과 조화’에 의해 스스로 돌아가는 천지일월의 운행 과정,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無爲以化)라고 합니다.
 
그럼 이처럼 스스로 둥글어 가는 자연섭리에 의해 존재하는 우주로 만족을 하면 될 텐데 왜 여기에 상제님이 계셔야 하느냐? 인과의 법칙에 의해 봄여름 다음에 가을겨울이 오고, 사시가 끊임없이 순환을 하는데, 왜 여기에 주재자가 있어야 하느냐? 왜 무위이화로 둥글어 가는 천지를 다스리는 분이 꼭 계셔야 하느냐? 이것이야말로 모순이 아니냐는 것이죠.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전혀 모순이 아닙니다. 사실은 모순이 아니냐는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인위적으로 우주를 잡아 돌리는 어떤 존재, 신이 없이 무위로 둥글어 가는 우주의 법칙이 있기 때문에, 그 법칙을 다스리시는 분이 꼭 존재하셔야만 한다.’는 논리가 성립합니다.
 
Q. 그러면 무위로 돌아가는 천리, 자연 이법과 상제님은 어떤 관계인가요?

A. 이 질문은 진리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명제인 이(理) 신(神)의 문제입니다.
 
인간 세상에는 크고 작은 사회 구조가 있습니다. 가장 작은 가정에서부터 조금 더 큰 공동체, 나아가 국가라는 사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넓게는 지구촌이 있고, 아주 크게는 우주라는 큰 소사이어티(society)가 있습니다. 그런데 각 소사이어티에는 반드시 중심적 존재, 센터가 있습니다.
 
한 예로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를 보세요.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모든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에 존재하는 전자군(電子群)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원자의 중심 센터인 원자핵 속에는 양성자(陽性子)와 중성자(中性子)가 있습니다. 음양의 기운을 조절해 주는 ‘주재의 자리’가 있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전자가 바깥 궤도로 나갈 때는 중성자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나가고, 들어올 때는 남은 에너지를 중성자에게 돌려줍니다. 생명의 근본인 원자에도 이처럼 센터, 즉 주재 자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가정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 나라에는 권력의 센터인 대통령 혹은 왕이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얼마 전 유럽의 여러 나라가 유럽 연합[EU]으로 통합이 되었습니다. 그 유럽 연합에도 최고 지도자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주라는 거대 사회에 하늘과 땅과 인간, 또 신의 세계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왜 없겠습니까? 태고 때부터 인류가 모셔 온 그분, 여러 종교에서 하나님, 미륵부처님, 옥황상제님, 천주님이라고 다르게 불렀을 뿐, 오직 한 분인 그분이 계십니다.
 
자연은 ‘무위이화(無爲以化)’로 둥글어 갑니다. 무위로 변화해 나가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과율로 스스로 변화 이법에 의해 둥글어 가는 자연을 통치하시는 상제님께서 ‘무위이화(無爲而化)’로 자존하십니다.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라 하느니라.”(道典 4:58:4)는 말씀처럼, 상제님은 자연법에 맞추어 봄이 되면 인간을 태어나게 하시고, 여름에는 인간의 삶과 문화가 성장하게 하시고, 가을이 되면 가을의 자연 이법에 맞춰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을 성숙하게, 역사를 성숙하게 해 주십니다. 무위로 돌아가는 자연의 꿈과 이상이, 자연의 이법, 섭리가 인간의 삶과 문화, 역사 속에 꼭 실현되게끔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제님이 존재하시는 섭리를 말 이을 이 자를 써서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합니다.
 
Q. 그렇다면 이법으로 둥글어 가는 자연 속에 왜 꼭 상제님이 존재하셔야만 합니까? 만약 이 우주에 자연 이법만 있고 주재자로서 상제님이 안 계신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까요?
 
A. 신학적으로 보면, 자연 자체가 존재하는 근거가 바로 이(理), 즉 자연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이법입니다.
 
만물이 태어나고 살아 있게 하는 근원적인 생명, 그 거대한 생명의 실제를 원신(元神)이라고 합니다. 또한 만물을 천지의 이법과 하나 되게 해 주는 주재자, 천지의 질서를 다스리는 신, 그분을 주신(主神)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상제님이 왜 꼭 자연섭리 안에서 존재하셔야 하느냐?
 
상제님이 안 계시면 자연의 이법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앞서 말했듯이 우주 1년에서 봄개벽으로 천지가 열려 사람과 숱한 생물이 태어납니다. 그리하여 여름의 성장 과정에서 무수한 문제와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천지 이치가 봄여름 선천에는 상극으로 둥글어 가기 때문이지요.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
이에 천지신명이 이를 근심하고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고자 하였으되 아무 방책이 없으므로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여 오매 내가 이를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큰 화를 작은 화로써 막아 다스리고 조화선경(造化仙境)을 열려 하노라. (道典 2:17:1∼8)

 
상제님의 이 말씀처럼 선천에는 모든 인간이 끊임없이 상극적 요소와 접하게 됩니다. 즉 자연에서 오는 홍수, 지진, 극한 극서, 또는 인간 문화 속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과 대결 구조, 여기서 비롯되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어나는 전쟁 등으로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며, 그 원과 한으로 인해 이 우주는 마침내 멸망당하고 맙니다. 이 무수한 원한과 고통의 문제는 인류가 해결해야 할 영원한 중심 과제인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어 봅시다. 선천은 남성 중심 문화입니다. 억음존양(抑陰尊陽)이라는 상극 구조 속에서 숱한 여성들이 마치 노예처럼 핍박받고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 왔습니다. 조선 사회에서 여자는 시집가면 자기 이름도 없었어요.
 
또 지금부터 한 5백여 년 전, 중세 서양에서는 여자를 요물이라 해서, 마녀 사냥한다고 5백만 이상 근 천만 명을 죽인 사실도 있지요. 그것도 불에 태워서 죽였습니다. 이걸 보면 참으로 천지를 천 번, 만 번, 억만 번을 뒤집을 수 있는 원한의 역사입니다.
 
상제님은 이 천지에 꽉 들어차 있는 인간과 신명의 깊은 원과 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성과 웅을 겸비한 어떤 인물이 나와도 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선천은 억음존양(抑陰尊陽)의 세상이라.
여자의 원한이 천지에 가득 차서 천지운로를 가로막고 그 화액이 장차 터져 나와 마침내 인간 세상을 멸망하게 하느니라.그러므로 이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비록 성신(聖神)과 문무(文武)의 덕을 함께 갖춘 위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세상을 구할 수가 없느니라. (道典 2:52:1∼3)

 
결국 인간의 역사 속에 누적돼 있는 무수한 고통과 원한을 치유하고 인간을 궁극적으로 구원해 줄 수 있는 분이 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상제님이 모악산 대원사에서 도통을 하시고 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온 천하가 큰 병(大病)이 들었나니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造化)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선경(仙境)을 건설하려 하노라.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道典 2:16:1∼3)
 
‘하늘도 병들고, 땅도 병들고, 인간도 신명도 모든 게 다 병들었다, 우주만유가 병들었다! 그래서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의 선경을 건설하려 하노라!
 
바로 여기에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신 큰 뜻이 함축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상제님이 계시지 않으면, 봄여름에 내어 기른 인간을 가을철에 성숙된 인간으로 새롭게 탄생시킬 수 없습니다. 우주의 봄여름가을겨울이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 억만 번 둥글어 가도 천지 스스로는 인간 농사의 결실을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소학小學』제사(題辭)에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라, 원형이정은 천도의 네 가지 원리요 인의예지는 인성의 벼리니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기367a~1



천도의 네 가지 덕성인 원형이정 가운데 가을의 정신이 바로 이(利)입니다. 이는 일체의 시비를 끊는 것입니다. 이 자는 천지의 역사가 총체적으로 정리되는 일이 가을에 이루어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상제님이 아니면 하늘과 땅과 신명계의 역사 정의(正義)를 바로 세울 수 없다, 천지대권을 쓰시는 절대자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상제님은 군사부(君師父)이십니다. 생명과 진리의 아버지로서, 큰 스승으로서, 우주의 크고 작은 모든 질서를 바로잡으시는 큰 임금님으로서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시는 천지의 주인입니다. 때문에 상제님이 안 계시면 인간은 큰 인격으로 궁극의 성숙이 될 수가 없습니다. 궁극의 성숙이란 도통, 즉 진리의 근본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상제님이 내려 보내신 선천 성자들의 가르침과 깨달음만으로는 인류는 방황을 하다가 결국 가을 개벽기에 다 소멸돼<$>서 없어지고 말 테지요.
 
그러나 다행히 상제님이 계심으로써 대자연은 생장염장으로 둥글어 가고, 인류는 진리의 뿌리를 찾게 되어 가을철 우주의 대통일 문화를 열어 갑니다. 천지의 인간 농사가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상제님이 계셔야만 자연의 이법도 그 뜻을 이룬다! 이것이 상제님이 꼭 존재하셔야만 하는 이유의 핵심이자 결론입니다.

Q. 그렇군요. 그럼 옛사람들은 상제님이 우주의 절대자로서 꼭 존재하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예를 들어 설명해 주세요.


A. 옛사람들, 특히 우리 한민족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상제님이 우주의 절대자로서 꼭 존재하셔야만 한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역사 속에 나타난 실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지금부터 4,200년 전에 동방에 9년 홍수 사건이 있었어요. 당시 중국의 왕조는 요순 시대에서 하나라로 넘어가는 교체기였습니다.
 
그 때만 해도 사람들은 자연을 단순히 자연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즉, 하늘을 자연천(自然天)과 상제천(上帝天)으로 구분하여, “자연은 상제님에 의해 둥글어 간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근본은 상제천이다. 상제천이 온 우주의 중심 하늘이며 대자연은 상제님의 통치에 의해 둥글어 간다. 상제님의 마음과 의지가 자연의 이법이며 그것이 곧 음양오행의 변화 원리이다.’ 이렇게 알고 있었지요.
 
다시 말해서 자연 이법이 따로 있고 상제님이 주재자로서, 독립적인 실체로서 따로 떨어져 존재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이 우주의 중심에는 본래부터 상제님이 계신다. 이 우주는 천지일월로 음양 시스템이 구성되어 둥글어 가게 되어 있다. 상제님의 의지가 곧 자연의 법칙이 되어 이 우주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라고 인식했지요.
 
9년 홍수가 일어났을 때, 4,300년 전 고조선의 단군성조는 부루 태자를 도산(塗山, 현 안휘성 회계산)으로 보내어 우(虞)나라의 치수관 사우에게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전수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는 마침내 기나긴 홍수를 다스리고 순임금에게서 제위를 물려받아 하(夏)나라를 열게 됩니다.
 

환단고기



그런데 도산회의 당시 부루 태자가 여러 제후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삼신 상제님께서 내가 가서 도와주는 것을 기뻐하시는 고로 왔노라(三神上帝 悅予往助故 來也).”라고 말입니다. 이 내용이 『환단고기』에 있는 「태백일사太白逸史」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제4第四> 번한세가(番韓世家) 상편에 나옵니다.
 
이처럼 요순(堯舜) 시대에서 하은주(夏殷周) 시대로 넘어가게 하였던 역사적 대사건인 9년 홍수에서 백성들을 구제한 결정적 계기도 천상에 계시는 상제님의 천명을 받아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또 한 예로, 공자가 늘 사모하며 치세(治世)의 원형으로 삼았던 인물이 주(周)나라의 창업자 문왕 무왕입니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紂)가 덕을 잃고 방탕과 폭정으로 백성들을 핍박하자 무왕 희발(姬發)은 주를 정벌하기에 앞서 상제님께 천제를 올린 후 「태서(太誓)」라는 글을 지어 전군에 포고합니다.
 
“지금 은나라 주왕은 여자(달기)의 말만을 믿고 스스로 천명을 어기고 정직한 세 현신(賢臣)을 해쳤으며, 조부모 이하 친족을 멀리하였다. 조상들이 이어 온 악곡을 버리고 음탕한 악곡을 지어 순정한 음악을 어지럽히고 여자를 즐겁게 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제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하느님이 내린 천명을 받들어 천벌을 단행하고자 한다. 모두 분발하라! 기회는 결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今殷王紂乃用其婦人之言, 自絶于天, 毁壞其三正, 離 其王父母弟, 乃斷棄其先祖之樂, 乃爲淫聲, 用變亂正聲, 怡說婦人. 故今予發維共行天罰. 勉哉夫子, 不可再, 不可三! 『사기史記』<주본기周本紀>)
 
이처럼 문왕, 무왕 또한 상제님의 천명을 받아서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상제님의 명령으로 둥글어 갑니다. 천지도, 인간 역사도 대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이신 상제님의 천명으로 둥글어 간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그러나 17세기 계몽주의, 과학주의 이후로 사람들은 자연의 객관적인 질서에만 몰두하여 자연의 중심에 계신 통치자 하나님,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상제 문화 자체를 완전히 잃어버렸어요. 그리하여 지금에 와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본래 호칭이 ‘상제님’이라는 사실조차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