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북한산 정상을 오른다고 상상해 보세요. 등산로는 여러 개입니다. 우이동 방면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구기동이나 불광동 방면으로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길마다 풍경도 다르고, 난이도도 다르고, 거쳐 가는 능선도 다릅니다. 하지만 어떤 길을 타든 결국 정상인 '백운대'에서 하나로 만납니다. 정상에 서서 내려다보면 자신이 어느 길로 올라왔는지 한눈에 보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이 꼭 이와 같습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유교, 도교, 힌두교... 수없이 많은 종교들이 저마다 다른 언어로, 다른 방식으로, 다른 시대에 인류에게 가르침을 전해왔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종교가 생겼을까요? 인류가 멍청해서 하나의 진리를 놓고 쓸데없이 분열한 것이 아닙니다. 각 시대와 각 지역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맞는 가르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갓난아이에게는 젖이 필요하고, 유치원생에게는 동화책이 필요하고, 중학생에게는 교과서가 필요합니다. 같은 내용을 가르치더라도 대상에 따라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인류 문명이 막 시작되던 수천 년 전에 인간들에게 필요한 가르침과, 문명이 성숙한 지금 시대에 필요한 진리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증산도에서는 이것을 우주의 계절에 비유해서 설명합니다. 지구의 봄과 여름에 해당하는 지난 수천 년 동안, 각 종교들은 인류 문명이라는 나무를 키워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기독교는 사랑과 구원의 씨앗을 심었고, 불교는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지혜를 키워냈고, 유교는 사회 질서와 인간 관계의 틀을 잡아주었습니다.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같은 나무의 다른 가지들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가을이 오면 나무는 더 이상 가지를 뻗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자라면서 모은 모든 에너지를 열매 하나에 집중시킵니다. 봄에 뿌린 씨앗이, 여름에 자란 나무가, 가을에 맺는 열매 속에 총체적으로 담기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 시점입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하나로 통합되어 최종 결실을 맺는 '열매 진리'가 등장해야 할 때인 것이죠.
증산도는 기존 종교들을 부정하거나 폄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 종교가 인류에게 기여해 온 역할을 깊이 인정합니다. 다만 이제는 그 모든 줄기와 이파리의 진액이 한곳으로 모여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책상을 예로 들면, 유교, 불교, 기독교, 도교가 각각 책상의 다리라면, 증산도는 그 다리들이 받치고 있는 책상 판 그 자체와 같습니다. 다리가 없으면 책상 판이 쓰러지고, 책상 판이 없으면 다리는 의미가 없습니다. 둘 다 필요하지만, 최종적으로 물건을 올려놓고 일을 하는 곳은 책상 판입니다.
그렇다면 종교의 끝은 어디일까요? 증산도는 그 끝이 '완성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두려움 때문에 신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이치를 온전히 깨달아 신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성숙한 인간. 바로 그것이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꿈꿔온 최종 목적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