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우리는 단군 이야기를 '신화'로 배웠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 곰이 사람이 된 웅녀, 그리고 단군왕검의 탄생. 이것을 그냥 옛날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해봅시다. 왜 유독 우리 역사만 '신화'가 되었을까요? 중국의 역사는 신화가 아니고, 일본의 역사는 신화가 아닌데, 왜 우리의 고대사만 신화로 취급받게 되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뿌리를 자르는 것입니다. 줄기를 잘라도 뿌리가 살아있으면 다시 싹이 납니다. 하지만 뿌리를 완전히 잘라버리면 아무리 굵은 나무도 결국 말라 죽습니다. 한 민족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라는 뿌리를 잘라버리면 그 민족의 혼은 서서히 죽어갑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잃어버린 민족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지 못합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동이족(東夷族), 즉 우리 민족의 찬란한 역사가 자신들의 역사보다 오래되고 위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서를 편찬할 때 우리 조상들의 업적을 자신들의 것으로 흡수하거나, 아예 기록에서 지워버렸습니다. 최근에도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진행된 조직적인 역사 왜곡의 연장선입니다.
일본은 훨씬 더 직접적이고 폭력적이었습니다.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조선총독부는 전국에 걸쳐 우리 역사서를 수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가정에 보관된 역사책, 족보, 문헌들을 강제로 빼앗아 불태웠습니다. 그 수가 무려 20만 권이 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식민사관, 즉 우리 민족은 스스로 나라를 운영할 능력이 없고 역사적으로도 항상 중국이나 외세에 종속되어 왔다는 이론을 만들어 교육시켰습니다.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 조작이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이 식민사관이 지금도 우리 역사 교과서에 그 잔재가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일제가 심어놓은 역사 인식의 틀이 광복 이후에도 청산되지 못하고 학계에 뿌리를 내린 채, 여전히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산도에서는 '삼독(三毒)'이라고 표현합니다. 중국의 중독(中毒), 일본의 왜독(倭毒), 그리고 서구 문명이 심어놓은 양독(洋毒). 이 세 가지 독이 우리 민족의 역사 의식을 병들게 했습니다.
서양의 입장도 살펴봐야 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의 역사학이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록이 부족하거나 서구의 고고학적 기준에 맞지 않는 동양의 고대사는 '신화'나 '전설'로 분류되었습니다. 기록 중심의 서구 역사학에서는 문자 기록이 없거나 부족한 시대는 역사가 아니라는 기준을 적용했는데, 이것이 우리의 수천 년 구전(口傳) 역사와 다양한 형태의 기록들을 모두 '신화'로 격하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고고학 발굴이 진행되면서 우리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홍산 문화(紅山文化) 유적이 대표적입니다. 중국 내몽골과 요녕성 일대에서 발견된 이 유적은 기원전 4,000년에서 3,000년 사이의 것으로, 우리 민족의 조상인 동이족의 문화와 직접 연결됩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옥으로 만든 곰 조각상과 제천 문화의 흔적들은, 우리 역사서에 기록된 환웅과 웅녀의 이야기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실제 역사적 사건을 담은 것임을 시사합니다.
증산도는 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잃어버린 9,000년의 뿌리 역사를 복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 공부가 아닙니다. 잘려나간 뿌리를 되살려 민족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작업이며, 우주의 가을을 맞이하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생존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