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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60대 이상이 가장 궁금해 하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질문에 대해 증산도 진리를 바탕으로  생성형 AI가 알기 쉽게  정리한 답변을 소개합니다.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진정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작은 순간들 37가지 < 뉴스&이슈 < 기사본문 - 허프포스트코리아

 

한 어머니가 아픈 아이를 밤새 간호했습니다. 잠도 못 자고 피곤했지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아이가 조금만 편해지면 그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하지만 근본은 같습니다. '상대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증산도에서는 사랑을 더 크게 봅니다. 

단순히 내 가족, 내 친구만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주 만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한 사람의 고통도 모두 내 고통이고, 한 사람의 기쁨도 모두 내 기쁨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감정만이 아닙니다. 사랑은 실천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아픈 사람을 돌보고, 길 잃은 사람에게 진리를 알려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사랑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을 가을 개벽소식을 알려주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부모가 믿음의 자녀를 세운다” - 아이굿뉴스

 

한 정원사가 나무를 기릅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가지를 다듬어줍니다. 

하지만 나무를 억지로 당겨서 키우지는 않습니다. 나무가 스스로 자라도록 환경을 만들어줄 뿐입니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정원사이고, 아이는 나무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억지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본래 가진 가능성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증산도적 자녀 교육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영적 교육입니다. 

아이에게 단순히 공부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너는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입니다.

 

둘째, 인성 교육입니다. 

남을 배려하고,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증산도에서는 특히 '상생의 마음'을 강조합니다.

 

셋째,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말보다 행동을 보고 배웁니다. 부모가 진리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 방법도 사랑 없이는 소용없습니다.

어느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 좋은생각 | 순복음영산교회

 

두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서로 부딪히기도 했지만, 뿌리는 땅속 깊은 곳에서 서로 엉켜 있었습니다. 

태풍이 와도 함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뿌리 때문이었습니다.

 

부부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때때로 의견이 다르고 부딪힐 수 있지만, 깊은 곳에서는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증산도에서는 부부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왜냐하면 부부는 하늘과 땅의 관계,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부부 관계를 위한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타고난 성향이 다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둘째, 상생하는 것입니다.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살려주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상대의 장점은 칭찬하고, 단점은 보완해주는 것입니다.

 

셋째, 같은 목표를 가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생활을 같이하는 것을 넘어, 함께 진리를 공부하고 도를 닦으며 영적으로 성장해가는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함께 상제님의 진리를 공부하면, 관계는 저절로 좋아집니다. 왜냐하면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보험

 

한 집안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작은 방에서 지내고, 손자는 제일 큰 방을 썼습니다. 

부모는 늘 자식 중심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그 손자가 자라서 부모가 되었을 때도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자기 부모는 뒷전이고, 자식만 최우선으로 대했습니다. 그때서야 부모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보여준 대로 배운 것이구나."

 

요즘 세상에는 자식이 왕처럼 대우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지만, 정작 부모님(조부모)는 소외되기 일쑤입니다.

 

증산도에서는 '천지부모(天地父母)'를 강조합니다. 하늘과 땅이 부모이듯, 우리 부모님도 나에게는 하늘과 땅 같은 존재입니다.

효도는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우주의 이치입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라듯, 부모를 잘 모셔야 자식도 잘 자랍니다.

물론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히려 부모를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식에게 가장 좋은 교육입니다.

자식만 중심에 두는 가정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삼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진정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공감] 인간에게 성격이 곧 운명일까 - 부산일보

 

한 씨앗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운명적으로는 큰 나무가 될 씨앗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땅에 심어지고, 충분한 물과 햇빛을 받으며, 정성껏 가꿔줄 때만 그 운명이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명을 '미리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될 대로 되겠지'라며 체념하거나, 반대로 '운명 따위는 없어'라며 무시하기도 합니다.

 

증산도에서는 운명을 좀 다르게 봅니다. 운명은 있되, 그것이 고정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늘에서는 분명히 큰 계획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인류를 구원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계획입니다. 이것은 우주적 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실현되려면 인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진리를 만나려고 노력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려고 할 때 비로소 좋은 운명이 펼쳐집니다.

 

결국 운명은 하늘의 뜻과 인간의 노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에 주목하자, 예수님이 나의 전부가 됐다 | 복음기도신문

 

한 마을에 여러 명의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수학 선생님, 국어 선생님, 영어 선생님... 각자 다른 과목을 가르치지만 목적은 같았습니다. 학생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증산도에서는 예수님을 매우 존경합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서양 땅에 내려오셔서 사랑의 진리를 전해주신 위대한 성자입니다. 

마치 각 나라마다 그 나라 말로 된 교과서가 필요하듯, 서양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필요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동양에서 자비의 진리를, 공자님은 인의의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각각 다른 말로, 다른 방식으로 가르쳤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같았습니다. 인간을 깨우치고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성자들의 가르침을 하나로 묶어서 완성된 진리로 만들 때가 왔습니다. 

마치 각 과목별로 배운 것들을 종합해서 졸업장을 받는 것처럼, 각 종교의 가르침이 모여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게 됩니다.

 

기독교도 이런 완성된 진리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가 되자 - 딴지 USA

 

한 아이가 아버지께 뭔가를 부탁할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냥 "아빠, 용돈 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정말 간절할 때는 다릅니다. 

"아빠, 제가 정말 필요해요. 이런 이런 이유로 꼭 필요하거든요. 제가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요"라고 마음을 다해 말합니다.

 

기도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마음을 다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증산도의 기도는 단순히 '달라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제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온 인류가 잘되기를 바라시는 마음,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기도는 "저만 잘되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잘되게 해주세요"입니다.

 "제 가족만 건강하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모든 가정이 화목하고 건강하게 해주세요"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늘의 마음과 통하게 되고, 진정한 기도 응답을 받게 됩니다.

과학 종교 지적 설계 하나님의 믿음에 대한 믿음과 현실의 증거와 증거 진화 또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관계 로열티 무료 사진, 그림,  이미지 그리고 스톡포토그래피. Image 61994361

 

한 마을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회를 만들겠다. 종교는 필요 없다." 처음에는 잘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마음은 공허했습니다. 

"나는 왜 사는가?", "죽으면 끝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보면 종교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단순히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영적 갈증이 있습니다. 

"나는 어디서 왔고,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원합니다.

 

과학은 "어떻게"에는 답할 수 있지만 "왜"에는 답하기 어렵습니다. 

법률은 행동을 규제할 수 있지만 마음을 다스리지는 못합니다.

 

증산도에서는 종교를 '인간의 본성적 요구'로 봅니다. 

마치 배고프면 밥을 찾듯, 인간의 영혼은 자연스럽게 신(神)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의 사회는 맹목적이고 미신적인 종교가 아니라, 이성과 조화를 이루는 종교가 필요합니다. 

과학과 종교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 없는 사회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종교로 발전해야 합니다.

The Compass and The Map | Our Daily Bread Ministries

 

한 사람이 넓은 바다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막막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별을 보고 방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별은 그에게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우리도 종종 길을 잃습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들 앞에서 답을 찾지 못해 헤맬 때가 있습니다.

 

종교는 이런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단순히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것을 넘어서,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존재 이유를 알려줍니다.

 

증산도에서는 모든 종교가 나름대로 귀중한 가르침을 전해왔다고 봅니다. 

불교는 자비를, 기독교는 사랑을, 유교는 인의를 가르쳤습니다. 각 종교는 그 시대 그 지역 사람들에게 필요한 진리를 전해준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종교의 진리가 하나로 통합되는 때입니다.

 마치 여러 갈래의 시내가 모여 큰 강을 이루듯, 각 종교의 가르침이 모여 완전한 진리를 이루게 됩니다.

상실의 고통에서 의미 찾을 때 절망은 희망이 된다 | 한국경제

 

한 도공(陶工)이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흙을 빚어서 모양을 만들고, 뜨거운 불 속에 넣었습니다. 

흙덩이 입장에서는 너무 괴로웠겠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만 단단하고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고통도 이와 같습니다. 아무도 고통을 좋아하지 않지만, 고통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건강할 때는 건강의 소중함을 모르지만, 아플 때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풍족할 때는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모르지만, 어려움을 겪어봐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게 됩니다.

 

증산도에서는 고통을 '영혼의 성장 과정'이라고 봅니다. 

마치 운동을 할 때 근육이 아픈 것처럼, 영적으로 성장할 때도 아픔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극즉반(極則反)'의 원리입니다. 

이는 '극에 이르면 반전된다'는 뜻입니다. 가장 어려운 순간이 지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찾아온다는 의미입니다.

 

고통스러울 때일수록 "이것도 지나갈 것이다", "이 시련을 통해 나는 더 성장할 것이다"라고 믿고 견디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희망의 빛이 보이게 됩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 - 대학지성 In&Out

 

한 나비의 일생을 생각해보세요. 처음에는 애벌레로 태어나 열심히 먹고 자랍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고치 속으로 들어가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얼마 후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고치를 뚫고 나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게 됩니다. 

애벌레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무(無)로 돌아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고 슬픈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증산도에서는 죽음을 전혀 다르게 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죽음은 마치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옷이 해져서 벗는 것이지, 그 옷을 입고 있던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는 좁고 낡은 집에서 나와 넓고 아름다운 새 집으로 이사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학교에 다니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배우고 성장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법, 인내하는 법, 용서하는 법, 그리고 진리를 깨닫는 법... 이런 것들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마치면 졸업장을 받고 학교를 떠나듯,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죽음 이후의 삶도 달라집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리를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선행을 쌓으며, 영적으로 성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7. 스승과 제자, 自他不二 ① - 동은 스님 < 동은·진광 스님의 사소함을 보다 < 2020 연재모음 < 지난연재 < 기사본문 -  법보신문

 

한 청년이 산길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중,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은 지팡이로 길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산 너머로 가면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네. 나도 그곳을 다녀왔지." 

청년은 그 말을 믿고 산을 넘었고, 정말로 좋은 곳에 도착했습니다. 나중에 청년도 노인이 되어 길 잃은 사람들을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스승은 우리가 가보지 못한 길을 이미 가본 사람이고, 우리가 모르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증산도에서는 상제님과 태모님을 가장 큰 스승으로 모십니다. 

상제님은 우주의 주재자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직접 길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스승도 필요합니다. 도를 먼저 공부한 선배 도반들, 진리를 잘 가르쳐주시는 분들이 바로 우리의 스승입니다.

 

좋은 스승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첫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둘째,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 

셋째, 제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독서가 안 되는 이유 - kcefkorea

 

한 사람이 좁은 마을에서만 평생 살았습니다. 그가 아는 세상은 그 마을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여행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통해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몸은 마을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마음은 온 세상을 여행했습니다.

 

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해줍니다. 천 년 전 성인의 지혜도 배울 수 있고, 지구 반대편 사람의 경험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증산도에서는 특히 경전(經典) 공부를 강조합니다. 

상제님과 태모님의 말씀이 담긴 도전(道典)을 읽는 것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신명과의 교감입니다.

 

하지만 일반 책도 중요합니다. 좋은 책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생각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특히 역사책을 읽으면 인류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고, 철학책을 읽으면 삶의 의미를 깊이 사색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마치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등불을 들고 걷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이 시대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려면 지혜가 필요하고, 그 지혜는 좋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미래의 성장동력, 인공지능(AI)의 현황과 과제 - 중앙매일

 

한 농부가 최신식 농기계를 샀습니다. 일은 훨씬 수월해졌지만, 뭔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예전에는 농사일을 하며 자연과 교감하고 철철이 변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는데, 이제는 기계만 다루는 느낌이었습니다.

 

21세기는 놀라운 시대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 사람들과 연결되고, AI가 복잡한 일들을 대신해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계는 우리의 몸은 편하게 해주지만, 마음과 영혼의 갈증은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증산도에서는 지금이 바로 '물질문명의 끝자락'이라고 봅니다. 

인류가 물질문명을 통해 배울 것은 다 배웠고, 이제는 정신문명, 영적 문명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기계를 잘 활용하되 기계의 노예가 되지 말고, 과학기술을 이용하되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영성을 깨우고, 서로 사랑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한국교육신문

 

한 집안에 형제들이 있었는데, 늘 서로 다투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집이 너무 좁고 자원이 부족해서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집도 넓고 방도 충분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형제들의 다툼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도 이와 비슷합니다. 지역갈등, 세대갈등, 계층갈등, 이념갈등... 왜 이런 갈등들이 끊이지 않을까요?

 

증산도에서는 이를 '상극(相克)의 질서'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지금까지의 세상은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는 것이 자연의 질서였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상극의 질서가 상생(相生)의 질서로 바뀌는 때입니다. 

마치 위의 예시에서 좁은 집에서 넓은 집으로 이사한 것처럼, 인류도 새로운 차원의 문명으로 도약할 때가 온 것입니다.

 

상생의 세상에서는 갈등보다는 화해와 협력이 중심이 됩니다. 서로 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주는 것이 더 유리한 구조로 바뀝니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이 질문은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마음속으로 절규해본 물음일 것입니다. 특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라고 묻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의 고통은 당신만의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커다란 아픔의 일부입니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상극의 시대'였습니다. 상극이란 서로 부딪치고 경쟁하며 이기려고 하는 질서를 말합니다. 마치 정글에서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것처럼, 인간 사회도 경쟁과 대립의 논리로 움직여 왔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수없이 상처를 주고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족 간의 갈등, 친구와의 다툼, 연인과의 이별 등이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계급 갈등, 민족 갈등, 종교 갈등 등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쌓인 원한과 상처들이 마치 저수지에 물이 고이듯 인류의 집단무의식 속에 축적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원한의 에너지가 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당신이 겪는 고통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 개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상극적 에너지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계절이 바뀌듯이 우주의 질서도 바뀝니다. 지금까지는 상극의 여름 시대였지만, 이제 상생의 가을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상생의 시대란 서로 돕고 살리며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말합니다. 더 이상 경쟁과 대립이 아니라 협력과 상생이 기본 질서가 되는 시대입니다.

 

이런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인간과 신명의 모든 원한을 해소하고, 상생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천지공사를 보셨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고통은 단순한 불운이 아닙니다. 이는 새로운 세상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겪는 산고의 고통입니다. 마치 새벽 전이 가장 어둡듯이,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가장 큰 시련이 있는 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시대적 의미를 깨닫고,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의 고통에는 분명한 끝이 있고, 그 끝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고통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기르는 시기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통도 소중한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