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로움의 근원을 찾는 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철학적 문제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사성제의 고성제로, 기독교에서는 원죄의 문ㅁ제로, 각각의 방식으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증산도에서는 이에 대한 더욱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답을 제시합니다.
괴로움의 뿌리는 바로 선천 5만 년 동안 지배해온 상극의 질서에 있습니다.
상극이란 만물이 서로 부딪치고 경쟁하며 이기려고 하는 우주의 운행 질서를 말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자연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같은 땅에서 자라는 나무들도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 경쟁합니다. 더 높이 자라려 하고, 더 많은 영양분을 차지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약한 나무는 도태되고, 강한 나무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민족과 민족, 종교와 종교 사이에 끊임없는 경쟁과 대립이 있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고, 그들의 원한이 천지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런 원한의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축적됩니다.
마치 방사능이 오랫동안 잔류하는 것처럼, 원한도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특히 억울하게 죽어간 신명들의 원한은 매우 강력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고자 하며, 그 과정에서 현실 세계에 다양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개인이 겪는 괴로움도 이런 집단적 원한의 영향을 받습니다.
내가 직접 누구를 해치지 않았어도, 과거의 원한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상극의 질서 자체가 괴로움을 만들어냅니다. 경쟁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성공이 다른 누군가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행복할 수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괴로운 현실에도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상극의 질서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주의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한 단계일 뿐입니다.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번데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인류도 성숙하기 위해서는 상극의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제 그 과정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상극의 시대가 마무리되고 상생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상생의 시대란 서로 돕고 살리며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말합니다.
이런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쌓였던 모든 원한을 해소하고, 상생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천지공사를 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겪는 괴로움은 마지막 괴로움일 수 있습니다.
새벽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가장 큰 시련이 있는 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시대적 의미를 깨닫고,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괴로움에는 분명한 끝이 있고, 그 끝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